나는 그때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 꽃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모든 걸 판단했어야 했어요.
그 꽃은 내게 향기와 아름다움을 선사했는데... 그런 식으로 도망치지 말았어야 했어요!
단순한 거짓말 뒤에 애정이 숨어 있다는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中 발췌.
안녕, 미카. 이 곳은 오늘도 정말 시리구나. 아무래도 밤이 찾아왔나 봐. 죽은 것들의 시간이. 섬뜩하기 그지없네. 난 밤이 싫어. 밤은 춥고, 너무나도 고독해. 시린 눈밭에 나 혼자만 버려진 것 같아 몸도 마음도 모두 아파와... 하지만, 네가 내 곁에 있게 된다면 내 밤은 정말 기가 막히게 변하지 않을까? 네 머리카락은 보름달처럼 밝은 금발이잖니. 황금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밀밭 같은 금발. 그래서 난 무서운 생각이 들 때마다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봐. 네가 언젠가 내 곁으로 돌아올 거라고 믿으면서. 계속, 계속, 하늘을 쳐다보고 있어. 서리처럼 투명하고 시린 유리관 속에서 계속해서 피를 흘리며 그것을 바라보고 있지. 근데, 왜 너는 찾아오지 않는 걸까. 길을 잃기라도 한 거니? 나는 너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내 심장을 내어 줄 만큼 너를 사랑했는데. 네가 내 모습을 사랑하고 찬미할 수 있도록 유리관에 들어가기까지 했는데. 왜 너는 날 찾아오지 않는 거니. 내가 너를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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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 아니. 니콜라이. 듣고 있어? 부디 이 경멸과 증오가 네게 닿기를 바래. 넌 최악이야. 구두쇠에다, 항상 퉁명스럽고, 하는 짓은 지루하기 짝이 없지. 난 네 마음을 아직까지 전혀 모르겠어. 나는 너를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왜 너는 날 사랑해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너를 향한 내 애정이 너무나도 일방적인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뭘까. 난 네가 내 마음을 받아주기를 바랬어. 내 껍데기를 꿰뚫고 본질을 알아차리기를 바랬지. 너와 닮고 싶어 눈에 상처까지 새길 정도로 난 너를 사랑했어. 너처럼 천한 사람을 내 반려로 들일 만큼 너를 사랑했어. 항상 너를 불러 노래를 부르게 시키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네 춤에 응해준 것도 너를 사랑했기 때문이었어. 그런데 왜 너는 날 사랑해주지 않는 거야? 난, 단지, 네게서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를 듣고 싶었어. 네가 내 손을 잡고 내게 입을 맞추며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게 듣고 싶었어. 죽어서라도 상관 없었어. 단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이 세상에 널린 범인들처럼 행복하고 정겨운 삶을 살고 싶었어. 하지만, 이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게 되었네. 모든 게 끝나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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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미카, 아니. 이고라샤. 우리는 언제부터 어긋났던 걸까? 우리는 왜 이렇게 이기적인 걸까. 왜 서로를 제대로 사랑할 수 없는 걸까. 우리가 다른 곳, 다른 때에 만났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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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없네. 괜찮아. 너는 늘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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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적어도 나는 너를 사랑하잖아. 나는, 나 카테리나는... 너처럼 아름답고, 잘생기고, 고결하기까지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서 정말 행운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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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이고라샤. 서로를 사랑할 때마다 상처를 주어야 한다면 우리는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지 말자. 끊임없는 불합리 속에서 어긋나고, 또 어긋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고통을 참고 서로를 품에 끌어안고 입맞추는 걸 사랑이라고 부르자. 언젠가 네 심장이 찢겨나고, 내 심장도 찢겨나가 더 이상 우리에게 그 무엇도 남지 않게 되는 한이 있어도 서로를 사랑하도록 하자. 그 사랑이 무조건 영원할 필요는 없어. 아니, 영원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언젠가 끝이 나기에 우리는 모든 것에 진심을 다할 수 있는 거야. 그렇기에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순수한 모습으로 모든 것을 불태우며 빛날 수 있는 거지. 마치 네가 정말 좋아하는... 어두운 밤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그렇지만, 이고라샤. 나는 조금 더 욕심을 부리고 싶어. 너는 그걸 바라지 않겠지만, 난 그것이 영원했으면 좋겠어. 광기와 집착으로 점철된 끔찍한 마무리였지만, 네 머릿속에서는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끝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어. 네 추억 속에서 영원히 아름답게 남아 별처럼, 별처럼 빛났으면 좋겠어. 네가 우리가 있던 곳으로 돌아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나와 함께했던 것들을 떠올려주었으면 정말이지 행복할 것 같아. 내가 잠든 유리관 곁에 앉아 푸른 장미를 놓아 주고, 내가 좋아했던 자장가를 불러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 네가 눈물을 흘려 준다면 정말 좋을 것 같기도 해.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건 그로 인해 눈물을 흘릴 일이 생긴다는 거고, 네가 나를 보며 눈물을 흘려 준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갈망하던 네가 내 손에 길들여졌다는 걸 뜻할 테니까.
> ...카테리나. 나는, 당신을...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 당신을...
사랑해, 이고라샤. 언젠가 다른 곳, 다른 때에서 만나자.
> 사랑합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로...
언젠가는, 우리의 마음이 맞닿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기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