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Звезда

오만과,

 
"숭배한다는 건 내가 이 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옷을 잘 입고 가장 부자며 지식이 가장 많다고 인정하는 것이지!"
"하지만 이 별에는 아저씨 혼자뿐인데요!"
"나를 기쁘게 해다오! 아무튼 나를 숭배해다오!"
"난 아저씨를 숭배해요." 어린 왕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게 아저씨에게 어떻다는 거에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中 발췌.


 
폭력은 그닥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당신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허나, 당신에게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당신은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끝내고 그녀에게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신속한 방법을 택해야만 한다. 평화롭게 대화를 나누며 일을 해결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촉박하다… 그런 당신에게는 폭력이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방법이 되어 주었다. 정신병원에 수감된 2년의 시간 동안, 당신은 나가기 위해 많은 이들을 해쳤다. 자신을 막는 이들을 베고, 찌르고, 두들겼다. 지금 하는 짓 역시 당신이 그곳에서 해 오던 것들과 다를 바가 없겠지. 당신은 대답 대신 눈 앞의 사람을 가만히 훑었다. 얼굴을 통으로 가리는 두터운 베일, 긴 옷과 굽 높은 구두, 그리고 멀어버린 눈까지. 멍청하기 짝이 없군.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알면서도 저런 복장을 택한 건가. 얼굴을 가리는 것은 주위의 것들로부터 자신을 차단하는 것과 같다. 길고 치렁치렁하기만 한 옷은 잽싸게 움직이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며, 굽이 높은 구두를 신었으니 가벼운 충격에도 버티지 못한 채 넘어지고 말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청각이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다는 걸 뜻했겠으나… 저 자는 눈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리석게 관리자에게 눈을 팔아버린 것이 그 이유일 터이다. 그럼 굳이 조심할 필요는 없다. 힘을 쓸 가치조차 없는 약해빠진 상대다. 아무도 자신을 건드리지 않으니 자신이 그 무엇보다 강한 줄 알고 있었겠지. 오만하기 짝이 없다. 상대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힘을 주어 복부를 발로 걷어찬다. 곧바로 동작을 이어가 땅에 넘어진 상대를 엎드리게 하고, 구두의 굽으로 상대의 목을 짓누른다. 허튼 저항만 하지 않는다면 목이 부러질 일은 없을 테다. 자, 이제 무엇을 할 것이지? 카테리나를 들먹이며 날 도발할 것인가? 그녀가 날 시켜 네놈들 같은 죄인들을 처단해왔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그러면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기라도 할 건가? 내게 그런 게 통하지 않으리라는 걸 진즉에 겪어 보았음에도. 결국, 늘 그러하였듯 가짜 신을 들먹이며 구원을 부르짖기라도 할 건가? 멍청하기 짝이 없군. 그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그가 당신을 구원해줄 거라고 믿다니. 오만과 헛된 논리에 찌들어 자신의 분수를 잊어버린 자의 말로다. 당신은 조소를 지으며 목을 밟은 발에 힘을 준다. 숨만 겨우 쉴 수 있을 정도로 틈을 내어 주며, 비웃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그리 말을 걸었지…
 
“싸울 방법이 있다고 했는데,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은 몰랐군.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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